“우린 짐승이다” 현직 B급 판사가 말하는 리얼돌

“우린 짐승이다” 현직 B급 판사가 말하는 리얼돌

이번 리뷰는 현직 판사의 익명 기고문입니다. “섹스 로봇은 미래의 우리에게 완벽한 반려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로봇에 익숙해져 공감 능력이 사라진 인간을 양산할 것인가?” /게티이미지코리아

B급 판사는…

언뜻 판사처럼 보이지 않는 B급 인간. 법조인 대관에 이름을 치면 판사라고 나오긴 한다. 사건 기록이 연속극만큼 재미있지 않을 때까지만 법복을 입고 있을 예정이다. 그런데 과연 그날이 올까?

성(性)범죄는 성범죄인데 흉악하다기보다는 ‘찌질하다’는 느낌이 드는 유형의 잘못을 저지르고 피고인석에 서 있는, ‘허우대 멀쩡한’ 사람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

우선 ‘찌질한 성범죄’의 유형으로 뉴스에 나온 것들을 추려본다. 찜질방에서 다른 사람 발가락(!)을 빨았다거나, 멀티플렉스의 여러 상영관을 돌며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의 허벅지를 만지다 걸린 사람, 신호등 바뀌는 순간의 ‘슴만튀’(‘가슴 만지고 튀기’) 범죄자도 빼놓을 수 없다.

성추행 사건의 양형(피고인의 구체적인 사례에 맞는 적절한 형종과 형량을 정하는 것)이 고민 돼 사례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찌질한 성범죄’를 저지른 피고인 중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 특목고 나와서 멀쩡한 대학 다니던 사람도 꽤 보인다. n수 끝에 의대를 들어간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이도. 그런데 도대체 왜?

미국 어비스 크리에이션스의 섹스 로봇 '하모니(Harmony)'. /조선일보DB
미국 어비스 크리에이션스의 섹스 로봇 ‘하모니(Harmony)’. /조선일보DB

한때 ‘엄친아’였다가 지금은 남들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로 법정에 서게 된 피고인들의 변명은 대부분 비슷하다. ‘공부만 하느라 자연스런 교제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다. 숫기가 없는 성격이라 어찌하지 못할 욕구를 다스리지 못했다. 공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상한 방향으로 풀게 되었다’ 등등.

먼저 말해 두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성범죄란 없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다. ‘본능’에 이끌려 죄를 짓게 되었다는 식의 변명은 어떠한 형태의 것도, 적어도 내 재판에서는 단호히 물리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런 ‘찌질한 성범죄 유형’에 속하는 피고인들이 다시는 범죄의 길로 가지 않고, 정상적인 연애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훈련소가 있다면 어떨까. 찜질방, 영화관, 횡단보도 앞도 더 안전해질 수 있을 텐데···.

최근 벌어진 ‘리얼돌’ 논쟁도 비슷한 관점으로 보게 된다. …

…한쪽에서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소위 ‘강간 인형’이라며 넌더리를 친다. 단연코 금제품(禁制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쪽에서는 사생활은 자유인데 너무 과민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정말로 ‘진짜 사람’과의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리얼돌’의 영역과 ‘슴만튀’의 영역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전자의 견해(‘리얼돌’이 상징하는 성적 대상화의 심리 상태가 성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견해)도 귀담아들을 만하다고 본다.

인공지능(AI) 섹스 로봇 ‘하모니’(사진 왼쪽). 어비스 크리에이션사는 하모니를 올 연말부터 시판한다고 밝혔다. 예상 가격은 1만5000달러(약 1700만원)이다.
미국 어비스 크리에이션스가 만든 인공지능(AI) 섹스 로봇 ‘하모니’. /조선일보DB

도무지 좋아하는 상대에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모쏠’들은 진짜 사람과의 상호 작용이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그런 사람이라고 어떤 ‘본능’조차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욕구가 왜곡돼 그릇된 방향으로 분출되는 것일까.

상대와 말을 섞지 않더라도 자연으로부터의 신호를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처리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아주 조금의 ‘자유로운 영역’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그것이 꼭 사람을 빼닮은 ‘리얼돌’이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결론을 못 내렸다.

중국산 모방품 말고 1000만원짜리 진짜…

…‘리얼돌’을 만드는 회사는 ‘어비스 크리에이션스’다. 그 회사에서 리얼돌에다가 인공지능(AI)을 탑재한 ‘하모니’를 개발 중이다. 창업주 데이브캣은 그 ‘하모니’를 ‘인공 반려자’라고 소개한다. 연인은 고사하고 ‘진짜 사람’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걸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반려 기술’의 집약체인 ‘하모니’가 꼭 필요한 제품이라는 것이다. ‘하모니’는 인체 모방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이 가져 올 ‘성적 본능’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조금은 짐작하게 해준다(다만, ‘리얼돌’ 논란을 보면, 그것에서 한 술 더 뜬 ‘하모니’를 한국에다 파는 것이 과연 될까 싶기는 하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18’에서 성인용 로봇 전문업체 어비스 크리에이션의 관계자가 섹스 로봇 ‘하모니’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18’에서 성인용 로봇 전문업체 어비스 크리에이션스의 관계자가 섹스 로봇 ‘하모니’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본능의 미래’를 엿볼 수 있도록 하는 미드(미국 드라마)라면 단연코 ‘웨스트월드’를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미국 HBO에서 제작했고, 현재 ‘왓챠’에서 스트리밍 중이다. 하루 4만 달러만 내면 호스트라고 부르는 안드로이드를 상대로 (본능이 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종의 ‘테마파크’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는 아마 ‘모쏠’이라도 연애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안드로이드가 사람 같기는 해도, ‘진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수많은 ‘모쏠’들도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HBO '웨스트월드:인공지능의 역습'
HBO ‘웨스트월드:인공지능의 역습’

웨스트월드에서 ‘호스트(안드로이드)’…

…들은 절대로 ‘게스트(4만 달러를 낸 이용객)’를 해칠 수 없다. 해치지 않도록 프로그램 돼 있는 정도가 아니라, ‘호스트’가 쏜 총에 설령 ‘게스트’가 맞더라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 그 테마파크의 룰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시즌이 거듭되면서 그 ‘룰’에 점차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보는 것이 꿀잼 포인트!). 그 곳에서는 ‘슴만튀’를 해도 당연히 처벌받지 않는다.

불쾌한 골짜기?…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오히려 불쾌함이 증가한다는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의 이론에 등장하는 심리학 용어. /그래프=위키백과
불쾌한 골짜기?…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오히려 불쾌함이 증가한다는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의 이론에 등장하는 심리학 용어. /그래프=위키백과

웨스트월드의 안드로이드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들이 ‘불쾌함의 골짜기’를 훌쩍 뛰어 넘을 수 있을 정도로, 겉과 속 모두 진짜 인간처럼 만들어졌다.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활성화 모드에 있을 땐, 자기 스스로를 100%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감각과 감정도 사람이랑 똑같다. ‘게스트’들이 제멋대로 구는 바람에(그곳에선 호스트에 대한 폭행, 약탈, 강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 호스트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잠자기 모드’를 거쳐 몸은 멀쩡하게 수리(?)되고 마음마저 깨끗하게 씻겨 진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호스트들은 자꾸만 악몽을 꾼다).

HBO '웨스트월드:인공지능의 역습'
HBO ‘웨스트월드:인공지능의 역습’

‘웨스트월드’…

…에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맘대로 하면 마냥 좋을 것 같은데, 드라마에 나오는 ‘게스트’ 중 몇몇은 어느 순간 묘한 불편함을 느끼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보는 나까지 불편해진다). 호스트와 사랑에 빠지는 게스트까지 있다. 그 불편함의 정체를 뭐라 쉽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 불편함에서 한 가지 질문의 단초는 찾아낼 수 있다. ‘리얼돌’에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진짜 사람’과 같은 친숙한 모습을 보태 ‘불쾌함의 골짜기’를 넘도록만 하면, 미래에는 과연 인공 반려자 ‘하모니’가 ‘진짜 사람’ 반려자를 완벽하게 대체하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진짜 사람’과의 교류를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사람을 대신할 ‘반려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시작한 일이, 인공지능 기술을 동원해 다시 ‘진짜 사람’과 비슷한 존재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약간 아이러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좋아하는 사람과는 말을 잘 못하는 ‘모쏠’들은 결국 상대의 모습을 꼭 빼닮은 안드로이드랑도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는지…).

HBO '웨스트월드:인공지능의 역습'
HBO ‘웨스트월드:인공지능의 역습

연애란 ‘진짜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중 가장 섬세한 궁극의 교류. 물론 처음 본 순간 두 사람의 마음 속에 그냥 ‘번쩍’하고 ‘스위치’가 켜져, 서로 쳐다보고 ‘헤헤’ 웃다가 그 날 저녁에 곧바로 껴안고 침대로 돌진하게 되는 경우도 없진 않다. 하지만 그런 운명의 상대를 만나 단숨에 불이 붙을 확률은 극도로 낮다(예컨대 ‘이○○’ 같은 잘생긴 배우도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라). 그럴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은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더 쉽지 않다.

1000만원짜리 리얼돌을 국제 배송시키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뉴스를 본다….

….조만간 ‘하모니’가 상품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웨스트월드’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이 여전히 불편하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서, 말을 걸고 조금씩 다가가며 마음을 열어 서로 통하도록 하는 그 과정 자체가, 그 끝에 맞게 되는 어떤 사랑의 열매 같은 것보다, 훨씬 더 달다. 조금씩 상대의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낄 때의 그 충실감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기술에는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힘이 있다지만, ‘인공 반려자’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지만, 제발 사랑만큼은 ‘진짜 사람’이랑 ‘밀당’ 거쳐서 하고 싶다.

“섹스 로봇은 미래의 우리에게 완벽한 반려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로봇에 익숙해져 공감 능력이 사라진 인간을 양산할 것인가?” /게티이미지코리아
“섹스 로봇은 미래의 우리에게 완벽한 반려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로봇에 익숙해져 공감 능력이 사라진 인간을 양산할 것인가?”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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